
김초엽, 천선란, 김혜윤, 청예, 조서월.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다섯 작가가 한 권에 모였다.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는 하나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는 장편이 아니라 다섯 편의 독립적인 SF 단편을 묶은 앤솔러지다. 평행세계에서 시작해 좀비, 외계생명체, 복제인간,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소재만 놓고 보면 작품마다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마지막 작품까지 읽고 나면 이상하게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사람은 무엇으로 다른 존재와 연결되는가.
그리고 이미 무너지고 있는 세계에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기억하는 일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SF라는 장르를 사용하지만 기술 자체보다는 사람과 관계를 바라보는 이야기에 훨씬 가깝다.
김초엽 〈비구름을 따라서〉
주요 인물
보민
이야기를 따라가는 중심인물. 죽은 최이연과 함께 살았던 룸메이트이자 가까운 친구다. 이연이 말하던 평행세계 이야기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이연이 죽은 뒤 이상한 초대장을 받으면서 그가 남긴 흔적을 다시 따라가기 시작한다.
최이연
보민의 옛 룸메이트.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과 평행세계의 가능성에 강하게 매료되어 있다. 사소한 물건들이 다른 세계에서 넘어올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런 물건들을 모은다.
강승희
이연과 함께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을 찾아다녔던 사람. 보민이 몰랐던 이연의 또 다른 모습을 알고 있다.
정찬현
보드게임 ‘노바 파우치’를 만든 개발자. 자신이 만든 적 없는 게임 구성품을 이연에게서 받으면서 이연의 이야기가 단순한 상상만은 아닐 가능성을 경험한다.
전체 줄거리
보민에게 어느 날 이상한 초대장이 도착한다.
초대장을 보낸 사람은 이미 죽은 최이연이다.
내용은 자신의 추도식에 와달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지만 초대장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집 안 곳곳에서 계속 발견되고 날짜와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심지어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날짜가 적힌 초대장까지 나타난다.
보민은 결국 초대장에 적힌 장소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강승희와 정찬현을 만난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이연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 사람이 알고 있는 이연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보민에게 이연은 함께 보드게임을 하고 수많은 상상의 세계를 이야기하던 룸메이트였다.
두 사람이 특히 좋아했던 것은 ‘노바 파우치’라는 게임이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물과 조건을 조합해 그런 물건이 자연스럽게 존재할 만한 세계를 상상해내는 방식의 게임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놀이였다.
하지만 이연은 점점 실제 현실에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물건들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이연은 서로 다른 평행세계 사이에 아주 얇은 경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특별한 의미가 없는 작고 흔한 물건이라면 우연히 그 경계를 통과해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믿는다.
양말 한 짝이나 작은 장난감처럼 누군가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 물건들이다.
승희는 실제로 이연과 그런 물건들을 찾아다녔다.
정찬현 역시 이상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개발한 보드게임의 구성품과 완벽하게 같은데, 자신은 만든 적이 없는 토큰을 이연에게 받은 것이다.
만약 평행세계가 존재한다면 다른 세계에서는 자신이 그 토큰을 실제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보민은 이제 자신이 몰랐던 이연의 시간을 조금씩 알게 된다.
그러나 이연은 이미 죽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차가 도로 밖으로 추락했고 이연은 돌아오지 못했다.
보민에게는 오랫동안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정말 단순한 사고였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다 세 사람은 자신들에게 도착한 수많은 초대장을 보며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이 세계의 이연은 죽었지만 모든 평행세계의 이연이 죽은 것은 아닐 수 있다.
어떤 세계에서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고, 또 다른 세계에서는 살아남았으며, 어떤 이연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수많은 이연이 같은 초대장을 엄청나게 많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나뿐인 특별한 물건이라면 세계의 경계를 넘기 어렵지만, 수없이 많이 만들어져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물건이 된다면 그중 일부가 다른 세계로 넘어올 수도 있다.
보민은 그것이 실제 진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연이 남긴 수많은 물건과 이야기를 바라보면서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연의 상상을 다시 떠올린다.
이연은 현실의 질서에 맞지 않는 존재들이 다른 세계에서는 조금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특히 햇빛 아래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대신 비구름을 따라 떠나는 존재들의 이야기는 보민에게 오래 남는다.
결국 보민은 이연이 살아 있는 다른 세계에 갈 수 없다.
그 세계가 정말 존재하는지도 증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것을 상상할 수는 있다.
이연을 다시 만날 수 없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만이 유일한 가능성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읽고 난 뒤
김초엽의 작품에서 자주 느끼는 정서가 있다.
거대한 과학적 아이디어를 다루면서도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국 사람 한 명을 기억하는 감정이다.
〈비구름을 따라서〉 역시 평행세계가 실제 존재하는지를 증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확인할 수 없는 가능성을 상상하는 일이 남겨진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미 일어난 비극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선택이 가능했던 세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지금의 현실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평행세계는 과학적 장치이면서 동시에 상실을 견디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천선란 〈우리를 아십니까〉
주요 인물
화자
과거 간호사였던 여성. 뇌종양으로 치료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존엄사를 선택한다. 이후 감염 사태 속에서 다시 움직이게 되지만 일반적인 감염자와는 다른 상태로 존재한다.
아내
화자의 배우자. 화자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사람이지만 이후 자신 역시 감염된다. 두 사람은 인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태가 된 뒤에도 서로 곁에 남는다.
장풍
두 사람이 바다로 돌려보내려 하는 바다거북. 작품에서 인간과 다른 생명체 사이의 경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존재다.
전체 줄거리
이야기가 시작될 때 화자와 아내는 이미 평범한 인간의 상태가 아니다.
두 사람은 죽음을 경험한 뒤에도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바다거북 장풍을 바다로 데려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화자는 원래 뇌종양을 앓고 있었다.
치료 가능성이 거의 없어지자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결정한다.
아내에게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남겨두고 먼저 죽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세계에 감염 사태가 벌어진다.
죽은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고 인간 사회는 급격하게 붕괴한다.
그런데 화자는 죽었음에도 일반적인 감염자와는 다른 모습으로 깨어난다.
몸은 분명 정상적인 인간과 거리가 멀어졌지만 기억과 사고능력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후 아내 역시 감염된다.
아내는 자신이 완전히 변하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만 결국 다시 움직이게 된다.
두 사람은 이제 인간과 감염자의 경계 어디에도 정확히 속하지 않는다.
문명이 무너지는 동안 두 사람에게 남은 목적은 하나다.
센터에 갇혀 있던 바다거북 장풍을 원래 살던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그들은 장풍을 데리고 바다를 향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무너졌는지가 드러난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떠나고 이동할 수 없는 사람들은 뒤에 남겨진다.
마침내 일부 인간은 지구 자체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
화자와 아내는 버려진 지구에 남는다.
두 사람의 모습도 점점 인간과 달라진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인간의 모습에서 멀어질수록 화자는 오히려 자연과 다른 생명체를 더욱 선명하게 느낀다.
그동안 인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분류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인간은 생명체마다 이름을 붙이고 종을 나누며 자신이 세상의 기준인 것처럼 행동해왔다.
그러나 장풍에게 인간이 붙인 이름과 분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침내 바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장풍을 놓아준다.
장풍은 인간에게 감사를 표현하지도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바다를 향한다.
처음에는 섭섭한 마음도 들지만 화자는 곧 그럴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애초에 장풍을 바다에서 끌어내 인간의 공간에 가둔 것도 인간이었다.
그러니 다시 바다로 돌려보낸 일을 인간의 선행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장풍이 떠난 뒤 화자와 아내는 바닷가에 남는다.
인간들이 언젠가 다시 지구로 돌아올 가능성도 생각한다.
그러나 화자는 인간이 떠난 뒤의 지구가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고 느낀다.
인간이 없어도 자연은 존재하고, 다른 생명은 계속 살아간다.
인간이 중심에서 사라진 뒤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 셈이다.
읽고 난 뒤
좀비를 소재로 하지만 공포보다 훨씬 강하게 남는 것은 사랑과 생명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모습이 사라지는 과정이 반드시 ‘괴물이 되는 과정’으로만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면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다른 생명과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결국 이 작품은 무엇을 인간이라고 부를 것인지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라는 이름이 사라지더라도 사랑은 남을 수 있는가.
화자와 아내를 보면 그 대답은 꽤 분명하게 느껴진다.
김혜윤 〈오름의 말들〉
주요 인물
이류
암호학 연구자. 현실적인 활용도가 낮다는 평가를 받던 추상적인 암호 체계를 연구해왔다.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외계생명체 오름의 언어에 관심을 가지며 연구센터에 들어간다.
정희정
언어학자이자 오름과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인물. 오름을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니라 의사를 가진 존재로 바라본다.
김준호
오름을 연구하고 보호하려 하지만 연구센터의 존속과 현실적인 상황 역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
하나, 두리, 세라
한국에 도착한 세 개체의 외계생명체. 인간과 달리 신체 접촉과 전기적 신호를 이용해 의사소통한다.
전체 줄거리
어느 날 지구 여러 지역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가 나타난다.
한국에 떨어진 세 개체는 하나, 두리, 세라라는 이름을 얻고 ‘오름’이라고 불리게 된다.
오름에게는 인간과 같은 언어가 없다.
신체에 난 돌기를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다.
인간 연구자들은 이 신호를 분석해 오름과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낸다.
통역사는 오름의 거대한 몸을 직접 올라가면서 필요한 부위를 접촉하고 신호를 전달한다.
암호학자 류는 이 독특한 언어 체계에 매료된다.
그리고 언어학자 희정과 함께 오름의 언어를 연구한다.
두 사람의 연구를 통해 인간과 오름이 주고받을 수 있는 표현은 점점 복잡해진다.
문제는 오름을 바라보는 인간 사회의 태도다.
처음에는 외계생명체와의 접촉이라는 과학적 사건으로 받아들였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름의 경제적 가치와 활용 가능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정부는 일부 오름을 연구시설로 옮기거나 대중에게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오름연구센터가 반대하자 지원은 줄어든다.
연구진도 하나둘 떠난다.
센터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김준호는 현실적인 타협을 생각한다.
오름들이 더 위험한 연구 대상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면 차라리 제한된 시설 안에서라도 보호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희정은 그것 역시 인간 중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오름에게 의사를 묻지 않은 채 인간이 마음대로 거처를 결정하는 순간, 보호와 소유의 차이는 모호해진다.
희정은 오름들과 직접 소통하려 한다.
인간이 만든 번역 방식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름이 실제 사용하는 신호를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인다.
위험할 정도로 강한 접촉을 감수하면서까지 오름의 의사를 이해하려 한다.
류는 처음에는 그런 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정치적 상황을 생각하면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싸움이다.
하지만 희정이 선택한 것은 승리 가능성이 아니다.
오름이 이곳에 남겠다면 자신도 그들을 혼자 두고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류도 결국 희정의 마음을 이해한다.
희정은 하나의 거대한 몸 위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려 한다.
류 역시 그 행동에 함께하기로 한다.
결말에서 이들이 싸움에서 이길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아무런 보장이 없어도 곁에 남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이야기가 끝난다.
읽고 난 뒤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연대’라는 말을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연대는 반드시 성공하는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리 계산해봐도 성공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혼자 남겨두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
희정과 류의 선택은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또한 다른 존재와 소통한다는 것이 결국 상대의 언어를 내 기준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내가 상대의 방식에 가까이 가는 과정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청예 〈아모 에르고 숨〉
주요 인물
오필리아
이야기의 중심인물.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불법으로 자신의 복제체 실비아를 만든다.
후디니
오필리아의 연인. 복제인간 연구와 관련되어 있으며 실비아를 단순한 복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바라본다.
실비아
오필리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복제체. 처음에는 오필리아에게 종속된 존재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만의 선택과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점이 드러난다.
와이즈
오필리아의 과거 연인. 이미 죽었지만 후디니와 오필리아의 관계에 숨겨진 중요한 비밀과 연결되어 있다.
전체 줄거리
이 세계에서는 인간 복제가 가능하지만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허가받지 않은 복제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
오필리아는 불법으로 자신의 복제체 실비아를 만든다.
실비아는 오필리아와 거의 같은 유전정보를 가진 존재다.
복제체에는 원본에게 강한 애착을 보이는 특성이 있다는 설명도 존재한다.
그래서 오필리아는 처음에는 실비아의 행동을 독립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이유 역시 복제체에게 입력된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필리아는 원래부터 사랑을 믿는 방식이 불안정한 사람이다.
상대가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려 하고 상대에게 그것을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실비아에게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실비아에게서 예상하지 못한 모습들이 나타난다.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하고, 오필리아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며 행동한다.
무엇보다 오필리아가 예상한 답을 그대로 반복하는 존재가 아니다.
조금씩 자신의 판단과 선택을 보여준다.
오필리아는 실비아를 자신의 복제품이 아니라 별개의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실비아에게 허락된 시간은 거의 없다.
법적으로는 곧 폐기되어야 한다.
오필리아는 결국 실비아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기로 결정한다.
자신의 신분을 실비아에게 넘겨주고 실비아가 오필리아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필리아는 자신의 과거에 숨겨져 있던 진실도 알게 된다.
과거 연인이었던 와이즈와 현재의 연인 후디니 사이에는 복제와 관련된 깊은 연결이 있었다.
후디니 역시 누군가의 삶을 이어받은 존재였다.
오필리아가 지금까지 누려온 사랑에도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내어준 선택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오필리아는 자신이 평생 사랑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은 사랑받는 것을 증명받으려고만 했다.
그러나 사랑은 상대에게 요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대에게 건네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오필리아는 실비아가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없애는 선택을 한다.
실비아에게 이름과 삶을 넘기고 자신은 사라진다.
읽고 난 뒤
다섯 작품 가운데 감정적으로 가장 극단적인 작품이었다.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지만 사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랑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 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그 사랑이 유전자나 명령에서 시작됐다면 진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질문의 방향이 뒤집힌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측정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상대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다.
제목 ‘Amo Ergo Sum’은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의미다.
처음에는 철학적 문구를 변형한 말처럼 보였지만 이야기가 끝날 때쯤에는 오필리아가 도달한 결론 자체처럼 느껴졌다.
조서월 〈I’m Not a Robot〉
주요 인물
랜슬롯
사막에서 홀로 임무를 수행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다른 로봇이 대부분 작동을 멈춘 뒤에도 오래전에 입력된 명령을 따라 매일 일을 계속한다.
프랭크
사막에 홀로 살아가는 노인. 기계 수리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랜슬롯을 계속 수리해준다. 동시에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전체 줄거리
랜슬롯은 매일 사막 어딘가로 나가 같은 일을 반복한다.
정확한 임무가 무엇인지는 처음에는 밝혀지지 않는다.
일을 마치면 프랭크가 사는 집으로 돌아온다.
프랭크는 랜슬롯이 고장 날 때마다 그를 고쳐준다.
두 존재는 인간과 로봇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동료에 가깝다.
프랭크는 소설을 쓴다.
자신이 쓴 이야기를 랜슬롯에게 읽어주지만 랜슬롯은 인간처럼 작품의 감동이나 아름다움을 판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프랭크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준다.
프랭크에게 소설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사람과 거의 단절된 채 살아온 그에게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다.
랜슬롯 역시 프랭크에게서 이름을 얻는다.
기계의 일련번호가 아니라 ‘랜슬롯’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랜슬롯도 이름 없이 살아가던 노인에게 프랭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서로에게 이름을 준 순간 둘의 관계 역시 조금 달라진다.
프랭크에게는 자신의 소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소망이 있다.
인터넷을 통해 글을 공개하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나타난다.
사람과 자동화 프로그램을 구별하기 위한 CAPTCHA 인증이다.
화면에는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라는 인증 과정이 나타난다.
그런데 정작 인간인 프랭크가 그것을 통과하지 못한다.
노화된 시력과 인지능력으로 작은 이미지와 흐릿한 문자를 구별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인지 기계인지 가려내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 실제 인간을 거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프랭크는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보내지 못한다.
좌절감은 점점 깊어진다.
랜슬롯은 계속 임무를 수행하지만 프랭크의 몸은 점점 약해진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다.
주변의 도로가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프랭크는 죽는다.
랜슬롯은 그를 묻어준다.
그리고 프랭크가 남긴 소설을 발견한다.
그 안에는 인간과 로봇의 목소리가 정말 그렇게 다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
인간의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목소리와 로봇에게 명령을 내리는 프로그램의 목소리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다른지를 묻는다.
랜슬롯은 여전히 답을 모른다.
하지만 프랭크의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 역시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랜슬롯이 매일 수행해온 임무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가 해온 일은 사막의 도로를 철거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도로를 만들 계획도 없고 일을 중단하라는 명령도 없다.
그저 과거 인간이 입력해둔 작업 명령이 남아 있기 때문에 랜슬롯은 계속 도로를 없애고 있었다.
프랭크가 병원에 갈 수 없을 정도로 고립된 환경과 랜슬롯의 노동이 묘하게 연결된다.
랜슬롯은 자신의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판단하지 않는다.
명령이 있으니 수행했을 뿐이다.
반대로 프랭크의 소설은 누구에게도 읽히지 못하고 현실적인 쓸모도 없었지만 랜슬롯에게는 새로운 생각을 남긴다.
프랭크가 죽은 뒤에도 랜슬롯은 다시 일을 하러 나간다.
하지만 이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랜슬롯의 내부에는 이제 언젠가 자신도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읽고 난 뒤
마지막에 랜슬롯의 일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지는 순간 앞부분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계속하는 것이 언제나 가치 있는 일인가.
반대로 아무런 경제적 가치가 없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정말 쓸모없는 일인가.
프랭크와 랜슬롯을 놓고 보면 답이 단순하지 않다.
로봇은 완벽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지만 그 임무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지는 모른다.
인간은 아무도 읽지 않을지도 모르는 소설을 쓰지만 그 이야기가 한 로봇에게 새로운 질문을 남긴다.
특히 인간임을 증명하는 시스템 앞에서 인간이 탈락한다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기 위해 만든 기준이 오히려 인간을 배제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다섯 개의 SF가 결국 한곳을 바라본다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의 다섯 작품은 얼핏 보면 서로 공통점이 거의 없다.
평행세계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있고, 문명이 붕괴한 뒤의 지구가 있으며, 외계생명체와 소통하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복제인간이 삶을 이어받기도 하고 인간이 사라져가는 세계에서 로봇이 홀로 일을 계속하기도 한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결국 비슷한 감정이 남는다.
모든 작품에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조금 비껴나 있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미 죽은 친구를 기억하는 사람,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두 사람, 인간과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생명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 예정된 복제체, 인간의 명령만 남은 세계에서 일하는 로봇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거대한 기술이나 문명의 미래보다 누군가와 연결되는 일이다.
보민은 이연이 남긴 세계를 상상한다.
화자와 아내는 인간의 형태가 사라진 뒤에도 함께 남는다.
희정과 류는 오름들이 있는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오필리아는 실비아에게 자신의 삶을 넘긴다.
프랭크는 랜슬롯에게 이야기를 남기고, 그 이야기는 로봇 안에 이전에는 없었던 질문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책 제목의 ‘토막 난 우주’라는 표현이 마음에 남는다.
이 작품 속 세계는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다.
사람은 죽고, 문명은 무너지며, 국가는 생명체를 자원으로 바라보고, 사랑은 사람을 상처 입히고, 인간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은 정작 인간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데도 인물들은 그 불완전한 세계 안에서 자신에게 남은 조각을 붙잡는다.
누군가의 기억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고 약속이기도 하며 한 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SF를 읽으면서 미래의 기술보다 현재의 인간관계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 남은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질문보다는 오히려 조금 더 작은 질문이었다.
누군가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곁에 남을 수 있을까.
아마 이 다섯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질문에 답하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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