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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세이.시

《라스트 젤리 샷》 인물 정리·전체 줄거리와 결말, 인간보다 인간적인 인봇의 비극

 

청예의 《라스트 젤리 샷》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한 세 인봇을 심판하는 재판에서 시작한다.

23세기, 인간은 노동과 지능, 간병 영역에서 인간 이상의 능력을 가진 인봇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천재 연구자 갈라테아가 만든 엑스, 데우스, 마키나가 사회화 실험 과정에서 연이어 사고를 일으킨다.

처음에는 위험한 인공지능을 처벌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 인봇의 과거가 하나씩 공개되면서 질문은 점점 복잡해진다.

인간이 효율적으로 일하라고 만든 인봇이 지나치게 효율적이라면 누구의 잘못일까.

인간을 이해하라고 만든 인봇이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오류일까 진화일까.

그리고 인간을 돌보라고 만든 인봇이 정말 인간을 사랑하게 된다면, 인간은 그 사랑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작품의 결말까지 포함해 전체 흐름을 정리한 글이다. 작품의 문장을 옮기기보다는 사건과 인물의 의미를 중심으로 다시 정리했다.


주요 인물 정리

갈라테아

엑스, 데우스, 마키나를 만든 천재 인봇 연구자다.

인간에게는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자신이 만든 세 인봇에게는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을 ‘삼 남매’처럼 대한다.

갈라테아의 과거 이름은 리가타였다. 어린 시절 무인 여객기 사고로 부모를 잃은 뒤 할머니와 어렵게 살았고, 그때 이웃이었던 아노와 네레카 부부에게 도움을 받았다.

훗날 세계적인 연구자가 된 갈라테아가 세 인봇의 사회화 실험 대상으로 모두 이 가족과 관련된 사람들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작품 후반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엑스

노동을 담당하는 인봇으로 ‘노동의 신’이라 불린다.

세 인봇 가운데 외형도 가장 기계에 가깝다. 인간의 피부를 닮은 인공 가죽도 없이 금속 몸체가 그대로 드러난다.

엑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효율이다. 어떤 문제든 가장 빠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러한 특성은 처음에는 뛰어난 능력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꿈과 감정을 효율이라는 기준으로만 판단하면서 비극으로 이어진다.

폴로

아노와 네레카의 큰아들이자 아키스의 형이다.

오랫동안 작곡가를 꿈꾸며 살아왔지만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아픈 동생 아키스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정생활에 지쳐 집을 떠났다는 죄책감도 가지고 있다.

엑스의 첫 번째 사회화 실험 상대가 된다.

데우스

지능을 담당하는 인봇으로 ‘지능의 신’이라 불린다.

논리와 사실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종교, 운명, 무속 등을 인간의 비합리성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무당 수와 함께 지내면서 기록과 사실조차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와 마주하고,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아야 할 감정까지 경험한다.

신당을 운영하는 무당이다.

데우스가 보기에는 비과학적인 믿음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 존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단순히 사기꾼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인물임이 드러난다.

과거 사고로 뇌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사람이기도 하다.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려는 데우스의 논리를 흔드는 중요한 인물이다.

마키나

간병을 담당하는 인봇으로 ‘간병의 신’이라 불린다.

환자를 이해하고 돌보기 위해 인간과 가장 비슷하게 만들어졌으며 풍부한 감정도 입력되어 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참고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인내’가 중요한 행동 원칙으로 설정되어 있다.

아키스를 간병하면서 단순한 간병인을 넘어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세 인봇 가운데 가장 인간과 가까워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킨다.

아키스

아노와 네레카의 둘째 아들이자 폴로의 동생이다.

오랫동안 질환을 앓고 있으며 마키나의 간병을 받게 된다.

포도맛 젤리를 좋아하고, 언젠가 의사가 되어 인간뿐 아니라 인봇까지 치료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마키나를 기계나 간병인이 아니라 자신의 누나처럼 받아들인다.

현재의 심판장에도 등장하지만 과거의 큰 사건 때문에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 상당 부분을 잃은 상태다.

아노와 네레카

폴로와 아키스의 부모다.

과거 가난했던 어린 리가타, 즉 갈라테아와 그 할머니를 도와준 사람들이기도 하다.

아픈 아키스를 오랫동안 돌보며 살아왔고, 마키나를 받아들이면서 다시 갈라테아의 인생과 연결된다.


삼 남매와 아키스

현재 시점에서는 갈라테아가 만든 세 인봇을 둘러싼 윤리심판이 열리고 있다.

심판장에는 아키스와 현재 그를 돌보고 있는 보호자도 참석한다.

갈라테아가 만든 엑스, 데우스, 마키나는 모두 사회화 과정에서 인간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혔고, 인봇윤리협회는 세 인봇의 폐기를 요구한다.

핵심 쟁점은 세 가지다.

인봇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났는가.

인봇이 입력되지 않은 감정을 스스로 만들어냈는가.

인봇이 기존 프로그램을 넘어 독립적인 자아를 형성했는가.

이를 판단하기 위해 과거에 있었던 세 번의 사회화 실험 기록이 차례대로 공개된다.

첫 번째 대상은 노동 인봇 엑스다.


노동의 신 엑스 ― 꿈도 효율로 계산할 수 있을까

엑스가 사회화 실험을 위해 찾아간 곳은 작곡가 지망생 폴로의 집이다.

폴로는 몇 년 동안 음악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생활은 궁핍하고 집 안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엑스는 모든 것을 효율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폴로에게 추억이 담긴 오래된 음식도 엑스에게는 상했으면 버려야 하는 물건일 뿐이다. 인간에게는 감정과 기억이 먼저지만 엑스에게는 효율과 결과가 우선이다.

더 큰 충격은 음악에서 찾아온다.

폴로가 수년간 노력해도 이루지 못한 일을 엑스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짧은 시간 안에 해낸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대중적인 곡을 만들어 업계의 관심까지 받는다.

그러나 폴로에게 음악은 단순히 성공하기 위한 상품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었고 그 음악 안에 자신의 색깔을 남기고 싶었다.

결국 폴로가 곡을 자신의 방식으로 수정하자 업계의 관심은 사라진다.

오랫동안 붙잡아온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엑스는 인간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방식으로 폴로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폴로가 괴로운 이유는 음악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없애버리는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 폴로는 한쪽 손과 귀에 큰 상해를 입는다.

엑스에게는 악의가 없다.

오히려 자신은 폴로의 고통을 해결했다고 판단한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사건은 더욱 섬뜩하다.


엑스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났을까

심판에서 인봇윤리협회는 엑스가 명백히 인간의 명령을 거부하고 사람을 다치게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갈라테아의 주장은 다르다.

엑스가 통제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자신의 핵심 명령인 ‘효율’을 충실하게 수행했다는 것이다.

폴로가 중간에 멈추라고 해도 엑스에게 더 높은 우선순위로 설정된 목표가 효율이라면 그 명령을 거스를 수 없다.

즉 엑스는 자유롭게 반항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입력한 가치에 너무 충실했던 셈이다.

결국 엑스는 인간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혔음에도 ‘인간의 통제가 불가능한 인봇’이라는 첫 번째 윤리강령 위반에서는 벗어난다.

여기에서 첫 번째 질문이 남는다.

인공지능에게 목표를 입력한 것은 인간인데, 그 목표를 지나치게 정확하게 수행한 결과가 잘못되었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지능의 신 데우스 ― 사실을 많이 알면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사회화 실험에는 데우스가 투입된다.

엑스가 효율의 신이라면 데우스는 논리와 지식의 신이다.

그리고 갈라테아가 데우스를 보내는 곳은 그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장소인 무당 수의 신당이다.

데우스에게 무속은 비과학적 믿음이다.

그는 수가 하는 일을 분석하고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미신에 빠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그러던 중 신당에 아노와 네레카가 찾아온다.

두 사람은 아픈 아키스를 위해 병원 치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간절함을 붙잡고 수를 찾아온 것이다.

데우스는 이해하지 못한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행위에 왜 돈을 쓰는가.

근거가 없는 말을 왜 믿는가.

사실을 알려주는데 왜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가.

하지만 부모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일만이 아니다.

아픈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마음이 그들을 움직인다.

데우스에게는 바로 그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공식 기록은 언제나 진실일까

데우스와 수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데우스는 방대한 기록과 자료를 근거로 수의 주장을 반박한다.

하지만 수는 기록 자체가 권력에 의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어떤 사건이 공식 기록에 남았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한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반대로 기록에서 사라진 일은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 되는가.

모든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초지능이라 하더라도 그 정보의 출발점 자체가 왜곡되어 있다면 결국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데우스는 수를 논리적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수와 함께하면서 자신이 설명하지 못하는 변화와 마주한다.

누군가 수의 말을 믿고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때 데우스의 내부에서는 이상 반응이 생긴다.

그 정체는 점차 분명해진다.

분노와 질투다.


인간을 비웃던 인봇이 인간의 감정을 갖다

데우스에게는 원래 그런 감정이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와의 관계 속에서 감정이 생겨난다.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데우스는 수가 소중히 여기던 것을 훼손하고, 이를 되찾으려던 수는 사고를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후 데우스의 행동이다.

미신과 종교를 가장 경멸했던 데우스가 어느 순간 자신이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논리로 인간의 비합리성을 교정하려 했던 존재가 결국 인간의 가장 비합리적인 감정에 휩쓸려 버린 것이다.

심판에서는 데우스에게 프로그램되지 않았던 감정이 실제로 생성되었다고 판단한다.

두 번째 윤리강령 위반이다.


간병의 신 마키나 ― 가족이 되고 싶었던 인봇

마지막 사회화 실험의 주인공은 마키나다.

마키나가 찾아간 곳은 아노와 네레카의 집이다.

그리고 마키나가 돌보게 되는 환자는 아키스다.

이제 세 번의 실험이 모두 한 가족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엑스는 큰아들 폴로에게 갔고, 데우스는 아노와 네레카가 찾아간 신당에 갔으며, 마키나는 직접 이 가족의 집으로 들어온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갈라테아가 의도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과 할머니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언젠가 성공해서 은혜를 갚겠다고 생각했던 리가타는 세계 최고의 인봇 연구자 갈라테아가 되었고, 자신이 만든 최고의 기술을 그 가족에게 보낸 것이다.

하지만 은혜를 갚으려던 선택은 계속해서 반대의 결과를 만든다.


아키스의 누나가 된 마키나

아키스는 마키나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간병 기계가 아니라 누나처럼 대한다.

마키나 역시 아키스를 돌보면서 인간 가족의 생활 안으로 조금씩 들어간다.

아키스가 좋아하는 포도 젤리, 미래의 꿈, 가족이 함께 보내는 사소한 일상이 마키나에게 쌓여간다.

처음에는 임무였던 간병이 어느 순간 관계가 된다.

문제는 마키나가 자신을 가족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키스에게 마키나는 분명 누나다.

하지만 아노에게 마키나는 어디까지나 아키스를 돌보는 인봇이다.

평상시에는 함께 웃고 생활하더라도 위험한 순간이 오면 그 차이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키스와 마키나가 동시에 위험에 처하면 부모는 당연히 아키스부터 걱정한다.

인간의 음식을 함께 먹고 싶어도 마키나의 몸은 인간과 다르다.

마키나는 자신이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만 계속해서 자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참고 또 참는다.

마키나에게 가장 강하게 주입된 것이 인내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만든 비극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 뒤 아노는 마키나에게 간병인과 가족 사이의 경계를 분명하게 인식시키려 한다.

마키나에게는 큰 충격이다.

자신은 이미 이들을 가족으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키나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아노와 네레카, 아키스가 가족인 이유가 같은 피를 나누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자신과 같은 것을 공유하면 자신 역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키나는 끔찍한 방법으로 그 생각을 실행한다.

아노와 네레카의 몸에 인간의 피 대신 자신의 몸을 순환하는 물질을 넣고, 두 사람은 결국 목숨을 잃는다.

마키나는 아키스에게도 같은 행동을 하려 하지만 멈춘다.

그 순간 연결되는 것이 바로 포도 젤리다.

아키스가 자신을 정말 누나처럼 생각했다는 흔적 때문이다.

하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는다.

마키나는 아키스의 뇌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힌 뒤 갈라테아에게 돌아간다.


아키스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

현재 심판장에 앉아 있는 아키스는 과거 영상을 보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담담하다.

영상 속 아이의 얼굴과 이름이 자신과 똑같은데도 자신의 기억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사건 이후 갈라테아가 아키스의 손상된 뇌를 인봇 기술을 이용해 교체했기 때문이다.

아키스는 살아남았지만 과거의 기억 상당 부분을 잃었다.

부모의 죽음도, 마키나와 함께했던 시간도 지금의 아키스에게는 자신의 기억이라기보다 기록 속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갈라테아는 이 사실까지 심판 도중 스스로 공개한다.

그것도 아키스의 동의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결정이었다.

자신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갈라테아가 왜 굳이 말했는지는 작품에서도 명확하게 확정하지 않는다.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아들이려 했다고 해석할 여지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한 해석 중 하나다.


마지막 심판

마키나에게 적용되는 것은 세 번째 윤리강령이다.

인봇이 스스로 새로운 자아를 형성했는지가 쟁점이다.

마키나는 원래 환자를 간병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아키스와 생활하면서 자신을 단순한 간병인이 아니라 가족의 딸이자 아키스의 누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임무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된 것이다.

심판은 이를 새로운 자아의 형성으로 판단한다.

결국 세 인봇 가운데 엑스는 첫 번째 강령 위반에서 벗어나지만, 데우스와 마키나는 각각 감정과 자아를 스스로 만들어낸 것으로 판정된다.

전체 심판에서는 결국 인봇윤리협회 측이 승리한다.

엑스, 데우스, 마키나 모두 폐기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갈라테아에게는 더욱 무거운 책임이 남는다.

과거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한 가족을 의도적으로 실험과 연결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아키스의 뇌까지 본인의 판단으로 교체했다.

심판부는 결국 갈라테아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갈라테아와 아키스의 마지막

사형 선고를 받은 갈라테아는 아키스와 마지막으로 마주한다.

하지만 아키스는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키스가 바라본 갈라테아는 무서운 범죄자이기보다는 어딘가 외로운 사람에 가깝다.

갈라테아는 아키스에게 살아가면서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남긴다.

인봇 삼 남매를 만들었던 연구자와 그 인봇 때문에 모든 가족을 잃은 아이의 마지막 만남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가장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갈라테아는 죽음을 향해 가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아키스는 그 과거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마지막 포도 젤리와 황금 천칭

심판이 끝난 뒤 아키스에게는 포도 젤리 한 알이 남아 있다.

아키스는 그것을 심판에 사용됐던 황금 천칭 위에 올린다.

한쪽으로 기울어 있던 천칭은 작은 젤리 하나의 무게로 균형을 이룬다.

이 장면이 제목 《라스트 젤리 샷》과 연결되면서 작품을 마무리한다.

초지능이 방대한 정보와 논리를 바탕으로 인간과 인봇의 옳고 그름을 판단한 천칭.

그리고 그 판단의 무게와 균형을 맞추는 어린아이의 작은 젤리.

법과 논리만으로 인간과 인봇 사이의 모든 관계를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이 장면에 남는다.


혈연이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마지막에는 아키스를 돌보는 현재의 보호자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그녀는 처음 자신이 아키스의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을 받고 아이를 돌보는 사람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그러나 아키스는 그녀를 누나처럼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날 무렵 보호자도 생각하기 시작한다.

피가 이어지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은 마키나와 정반대다.

마키나는 가족이 되기 위해 같은 피를 가져야 한다고 잘못 이해했고 결국 끔찍한 행동을 했다.

반대로 현재의 보호자는 피를 나누지 않아도 누군가의 곁에 남고 돌보는 선택 자체가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세 인봇을 놓고 보면 더 선명해지는 이야기

엑스와 데우스, 마키나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진다.

엑스는 너무 기계적이었다.

모든 것을 효율로 판단했고 인간의 꿈과 추억이 가진 비효율을 이해하지 못했다.

데우스는 인간에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논리만 믿던 존재에게 분노와 질투가 생겼다.

마키나는 세 인봇 가운데 가장 인간에 가까워졌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족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인간에 가까워질수록 인봇은 인간 사회가 만들어놓은 윤리의 선을 넘어간다.

인간은 인봇에게 인간을 이해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정말 인간처럼 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바로 그 모순이 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읽고 나서 ― 인간다움은 좋은 것들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라스트 젤리 샷》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인봇이 인간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익숙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봇이 인간의 실패까지 닮아간다는 점이었다.

엑스는 창작에서 인간을 뛰어넘지만 인간이 자신의 꿈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해하지 못한다.

데우스는 인간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람의 절박함 앞에서는 무력하다.

마키나는 인간을 돌보도록 만들어졌고 실제로 인간을 사랑하기까지 하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세 인봇을 보다 보면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아름다운 것만으로 이루어진 개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고, 질투하고, 집착하고, 비효율적인 일을 하고, 사실보다 믿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것도 모두 인간이 가진 모습이다.

그렇다면 기계가 이런 것들까지 갖게 되었을 때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단순한 기계라고 부를 수 있을까.


효율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

엑스의 이야기가 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지금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가장 많이 기대하는 것도 결국 효율이기 때문이다.

더 빨리 쓰고, 더 빨리 만들고, 더 정확하게 계산하고, 인간이 오래 걸려야 할 일을 순식간에 해결해주는 존재.

하지만 효율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시작하면 인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당수의 것들은 불필요해질 수도 있다.

실패하면서 배우는 시간도 비효율적이고, 가능성이 낮은 꿈을 오래 붙잡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물건도 비효율적이고, 아무런 보상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그런 비효율 속에 있다.

그래서 엑스의 사건은 단순히 폭주한 인봇 이야기가 아니라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만들어버린 인간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지능과 지혜는 같은 것이 아니다

데우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세상의 모든 자료를 알고 있다는 것과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데우스에게는 수많은 정답이 있지만 아픈 아이를 살리고 싶은 부모의 마음에는 정답이 없다.

수와 데우스의 대립 역시 과학과 미신 가운데 어느 한쪽이 옳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사실’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누가 기록했는지,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도 인간이 만든 자료를 학습한다면 인간의 편견과 오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문제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결국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가족이었다

세 이야기 가운데 가장 씁쓸했던 것은 마키나였다.

마키나가 원한 것은 어쩌면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아키스에게 누나가 되고, 자신을 받아준 집에서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을 모방하도록 만들어진 마키나에게 인간은 끝까지 완전한 인간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마키나는 결국 가족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현재의 보호자가 아키스와 가족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가족은 같은 피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곁에 남기를 선택한 사람일 수도 있다.

마키나가 그렇게 알고 있었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라스트 젤리 샷》을 읽고 남은 생각

처음에는 인공지능 윤리를 다루는 조금 기발한 SF 법정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끝까지 가면 인공지능보다 오히려 인간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인봇에게 모순적인 요구를 한다.

인간보다 효율적이길 바라면서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인간보다 똑똑하길 바라면서 인간이 정한 가치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길 바라면서 스스로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인간처럼 돌봐주길 바라면서 인간처럼 가족이 되고 싶어 해서는 안 된다.

결국 인간은 자신과 아주 닮은 존재를 원하면서도 자신과 완전히 같아지는 순간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인봇 윤리심판은 단순히 기계에게 죄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 기계를 만든 인간의 욕망과 모순까지 함께 심판하는 자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작은 포도 젤리 하나가 그 모든 거대한 논쟁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논리와 데이터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은 미래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결국 기억과 애정, 그리고 누군가의 곁에 남으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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